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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송하마을의 역사

작성일
2019.05.12 15:05
등록자
두메송하마을
조회수
390

영양두메송하마을은 판사, 북수, 삼거리, 송정 4개 자연부락이 하나로 합하여 송하리
또는 송하동으로 불리어지게 되었으며 최초에는 신라성의 석씨가 일가를 이루고 농경을
중심으로 생활하기 시작하여다고 한다. 이곳에 정착하게 된 원인은 신라는 박, 석, 김
세성씨가 돌아가면서 왕으로 추대 되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한 석씨 가문의 둘째 아들이
조정에 실망하여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산세가 수려하고
농토가 비옥 석씨가문은 번창하여 그 덕을 기리기 위해 매봉산 중턱에 있는 일명(황룡탑)
옆에 절을 짓고 국태민안과 씨족의 번성을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신라의 천년사직이 무너지면서 석씨 또한 가문이 쇠퇴하게 된바 이곳 송하의 황룡사도
관리가 소월하고 절은 어렵게 되었다. 그후 고려가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불교가 번창하여
한때는 황룡사의 절에 수십명의 승려들과 많은 신도들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보의 배불숭유정책에 의해 황룡사는 쇠퇴하게 되었으며, 조선중엽 약 300년전
영양천씨가 전라도 화산에서 이주하여 많은 농토를 일구어 천석의 싹을 생산 99칸의
대궐같은 집을 짓고 살았으며 밥을 하기 위해 쌀을 씻을 경우 일월면 덕봉까지 쌀뜸물이
흘러 내렸다고 한다. 그후 김영 김씨가 이곳에 정착하였고 경주 이씨는 200년전에 송정으로
들어와 생활하였다. 또한 평해 손씨는 120년전에 살기 시작하였다.